올해 둘째 주 예배부터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목사님의 '나는 믿습니다' 시리즈(사도신경)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배 때마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은 자신이 '그리스도인' 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바로 "예수를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자"입니다. 이렇게 '사도신경'은 중요한 것임에도 정작 우리는 매주 예배 때마다 암송만 했지 그 내용과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내용을 알려줄 수 있을까요? 우선, 우리가 매주 예배 중에 암송하는 사도신경은,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의 믿음이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도신경이 ..
요즘 MBTI의 인기가 뜨겁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시작하기 위해 MBTI로 자기소개를 할 수 있어야 한다죠. 4가지의 유형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내향/외향의 성향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경험에 비춰 봐도 누군가의 성향이 내향적 혹은 외향적인 것조차도 모른 채 대면하였다가 낭패를 당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성향은 어떠했을까요? 낯선 이(뱀)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하였던 하와는 ‘외향적’이고, 자신을 찾는 야훼의 목소리에 나무그늘로 숨었던 아담은 ‘내향적’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교회의 지체들의 성향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구역 식구들, 함께 봉사하는 교우들이나 혹은 교역자님들. 혹시 나와 다른 성향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지체들이 자신의 성향..
본회퍼 목사님의 시에 곡을 붙인 "선한 능력으로"의 연주 연상이 최근 들어 YouTube에 많이 보이더군요. 그만큼 점점 더 알려지고 있는 것이겠죠. 찬양만이 아니라 본회퍼 목사님의 사상과 그 마음 역시 세계의 기독교인들에게 더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특송을 위해 이 곡을 준비하고자 마음먹고 나니 기존의 가사(번역)가 마음에 와 닿지가 않았습니다. 그나마도 우리글로 번역된 것들은 대부분 일부만 불리울 뿐 전체를 부른 것은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곡에 맞는 가사를 다시 써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작사는 물론이거니와 글쓰기 자체에 아무 관심도 없는 제가 본회퍼 목사님의 신학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 함께 보내졌던 그 시를 감히? 라고 생각 되었지만, 마..
세차례에 걸친 기독교 부흥운동이 비록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게 된 백성들에게 종교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우리나라를 지배하고자 하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대규모 인원이 동원된 집회는 신경 쓰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기세를 꺾어버리고자, 경술국치가 있었던 해인 1910년 12월 27일부터 몇 건의 사건들을 계획적이고도 조직적으로 벌이게 된다.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경술국치)의 공포 1910년 12월 27일 안명근사건(안악사건) 1911년 1월 신민회사건(105인 사건) 바로 1910년말부터 1911년 초 까지 "OOO 사건" 이라고 불리우던 일들을 모두 묶어 "105인 사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발단은 망명중이던 안명근이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한 무관학..
한국의 기독교, 그리고 교회의 부흥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언제나 인용되는 "평양대부흥운동" 그 외에 원산 부흥운동과 백만명구령운동 등도 종종 언급되어지지만, 왜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는지, 그 이후는 어떻게 되었는지, 그것이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의 설명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한국 기독교의 초기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지나칠 수 없는 이 놀라운 사건들을 정리해 보았다. [1] 시대적 배경 만주에 진출한 스코틀랜드 선교사였던 존 로스의 주도로 한국인에 의한 한글성경 번역 작업이 시작된 후, 신약전서의 번역 작업이 진행된 것이 1877~1886의 9년 동안이었다. 이듬해인 1887년 최초의 한글 신약전서인 '예수셩교젼셔'가 인쇄되었다. 한국인에 의해 번역된 한글성경은 천주교 ..
을사늑약이 있던 1905년. 연동장로교회에서는 그 해 7월, 나라를 위하는 절절한 마음을 담은 "위국기도문" 1만 장을 인쇄, 배포하고 매일 오후 3~4시 국가를 위해 기도하도록 교인들에게 당부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운동은 을사늑약 체결을 앞두고 이미 상동교회에 천여 명이 모여 통곡하며 기도회를 드리기 시작하였으며, 늑약이 체결되고 나서도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교인들이 연합하여 매일 오후 2~4시 "위국기도문"에 따라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 I, P.275)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시여. 우리 한국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沈淪[침륜, 깊은 물]에 들었으며 오직 하나님밖에 빌데 없사와 우리가 일시에 기도하오니 한국을 불상히 여기사 耶利未亞[예레미야]와 以賽亞[이사야]와 但以理[다니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