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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교대회의 정확한 명칭은
'1910년 세계선교대회(에딘버러 선교대회, 1910 World Missionary Conference, the Edinburgh Missionary Conference)'
로서, 1910년 6월 14일부터 6월 23일까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 선교관련 대표자 1200명이 모여서
세계선교 보고를 통한 동향과 선교상황의 긴급성을 세웠던 유명한 대회입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기원이 바로 이때의 제1차 세계선교대회(World Missionary Conference)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발췌)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1910%EB%85%84_%EC%84%B8%EA%B3%84%EC%84%A0%EA%B5%90%EB%8C%80%ED%9A%8C
보통의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은 물론이고 역사에 대해 어지간한 지식을 가지지 않은 이상, 이 대회의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경우가 일반적일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관심을 끄는 지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대회가 끝난 다음날인 1910년, 6월 24일. 바로 '한일약정각서'가 체결됩니다.
- 한국(대한제국)이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편입되던 첫 단계로 흔히 '한일의정서(1904년 2월 23일)'를 꼽습니다.
- 그 유명한 '을사늑약(1905년 11월 17일)'이 그 다음 해에 체결되면서 외교권이 박탈되었고, 이어서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강제 퇴위되면서 대신 순종이 '허수아비 황제'로 세워집니다.
- '정미7늑약(1907년 7월 24일)' 혹은 '한일신협약'으로 인해 법령권 제정을 비롯한 '차관정치' 즉, 정부의 요직에 일본인 관리들이 '차관(次官)'으로 임명되어 본격적인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대한제국군도 해산(1907년 8월 1일) 됩니다. 또한 전국에 '재판소'를 설치하고 일본인을 배치하여 대한제국의 사법권을 장악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 이어서 사법권과 교도행정권을 일본제국에 위탁하는 '기유각서(1909년 7월 12일)'가 체결되고, 그해 9월부터 전국의 의병조직에 대한 본격적인 토벌작전이 시작되고 체포된 의병들은 일본 정부에 의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항일의병들의 만주 대이동이 시작됩니다.
'경술국치(1910년 8월 29일)'로 인해 '대한제국'이 문을 닫고 글자 그대로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되기 직전,
- '한일약정각서(1910년 6월 24일)'가 체결되고 일본제국에 '경찰권'을 위탁하게(=빼앗기게) 됩니다.
바로 그 시점.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쪽 끝을 지나 섬나라 영국의 도시 '에딘버러'에서 '세계선교대회'가 개최 되었습니다. 그 대회에 참석한 조선 기독교 대표로는 게일, 마펫 등의 선교사들과 함께 대한제국의 외무부 차관이었던 '윤치호' 였습니다. 한 당시 선교사업을 위해 조선 기독교에 모은 헌금 2만 5천 파운드가 '피선교국가로서의 모범'으로 소개될 정도였습니다.
윤치호(尹致昊, 1865년 1월 23일 ~ 1945년 12월 6일)
조선, 대한제국의 개혁, 민권운동가·문신이자 외교관·언론인·교육자, 한국의 정치가·교육자·사상가·언론인·종교가.
일제 말기 독립운동가에서 변절한 것으로 알려진 윤치호는 16세에 '신사유람단'의 수행원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후, 일본 유학시절 김옥균 등 개화파들과 어울리며 서구문물과 조선의 문명개화에 뜻을 두게 되었지만, 갑신정변 실패 이후 중국으로 도피하듯 유학을 떠나게 되고 이후 공부를 하게 된 '중서서원'이라는 곳에서 개신교 선교사들을 만나 개신교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1887년 4월 3일 세례) 그 후, 다른 선교사의 주선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조지아주 '에모리 대학'을 졸업(1893년 가을) 후 귀국길에 오르기 전, 그는 남감리교 헨드릭스 감독에게 '조선 선교를 위한 방문'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으며, 에모리대 캔들러 총장에게도 $230 정도를 기탁하며 남감리교의 조선 선교를 간청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이후 미국 남김리회의 한국선교의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귀국 후, 그는 정부 관료로 임명되어 나라의 녹을 받는 '공무원'이 됩니다. 아관파천 직후 민영환을 수행하여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1896년 4월 1일)에 다녀오기도 하였고, 한편으로 이상재, 서재필 등과 '독립협회' 활동을 시작하면서(1897년), 경성신문 창간(1898년)에도 참여합니다.
이 정도의 화려한 경력에 기독교 신앙까지 겸비한 '윤치호'가 1885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로 시작된 미국교회의 한국 선교에 큰 역할을 안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죠. 하지만 그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을 보면 이후 그의 행적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이 됩니다.
“1899년에 언더우드(Underwood)박사와 그 부인이 내가 지방관으로 있었던 원산으로 잠깐 들렸다.
내 사랑하는 아내가 그 부인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들이 1주일 후에 원산을 떠날 때 우리 집 바로 옆을 지나가면서도
우리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들끼리 예의를 정확하게 지키는 데다
우리에게도 자신들에게 예의 지키기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그들이기에,
그러한 행실은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
우리에게 인류 평등의 원칙이 명백하게 적혀 있는 성경을 가르치면서,
이처럼 그 원칙을 자신들이 위반하는 것이다 (...)
그들의 오만한 태도 때문에 나는 손해를 보면서도 그들과 되도록이면 사교하지 않으려고 한다.”
— 윤치호 일기, 1903년 1월 15일자
이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가 공동으로 '노비 해방' 문제로 각종 토론회 등을 개최하자 일본과 러시아를 등에 업은 수구세력들은 조정의 개혁을 주장하던 대신들의 파면과 독립협회를 해산(1898년 12월) 하도록 고종황제(대한제국)를 압박하였고, 이후 윤치호는 지방의 한직으로 돌면서 민중을 위한 개혁정치의 이상을 지방에서 실현해 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러일전쟁(1904~1905)이 발발하자, 내각의 외무부에 다시 임명되었고,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딸 '엘리스 루스벨트'의 방문 환영 만찬에 참석하게 되면서, 미국이 일본을 견제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고종황제의 국서를 전달하고자 하였지만, 이후 미국은 '포츠머스 조약(1905년 9월)'을 중재하는 역할을 통해 오히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하는 것'을 공인하게 만드는 것을 보며 미국에게도 실망하게 됩니다. (1903년의 일기에서의 감정과도 연결이 됩니다.)
그후 을사늑약(1905년 11월)의 체결로 인해 '한국의 독립은 사라져버렸다'고 말하고, 길에 나가 '조약의 무효'와 서명한 대신들의 처벌을 상소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갑니다. 아울러 정치적 활동은 중단하고 월남 이상재 선생을 도와 'YMCA 청년회 활동'에 전념하였으며,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제의로 대성학교 교장으로 초빙되기도 하였습니다.
1905~1910년의 한국(당시는 대한제국)의 복잡하고도 암울한 상황 속에서 어쩌면 가장 바쁘게 뛰어다녔던 사람을 꼽아보자면 바로 이 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경술국치(1910)의 바로 2달전(6월), 영국 에딘버러에서 개최되었던 세계선교대회의 한국대표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1910년에 촬영된 윤치호의 가족 사진입니다. 가운데 관복을 입고 앉은 이가 아버지인 윤웅렬, 뒤에 서 있는 이가 윤치호.
세계선교대회에 참석했을 당시의 사진은 찾을 수 없었지만, 가족사진이 같은 해의 것이니 비슷한 분이기였겠죠?
(그런데 18년전 에모리 대학 재학시절의 미모는 다 어디로...)
PS. 역사 전공자의 이야기로는 윤치호라는 인물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자료가 너~무 많아 고민이 될 정도라고 하더니 일단 활동하신 내용 자체가 거의 터미네이터급 입니다. 또한, 변절자로만 알려지기에 그의 활동 내용들이 너무 많아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한편으로 이해가 갑니다.
PS. 세계선교대회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것 역시, 세계복음화선교대회(1974, 일명 로잔대회)를 알아보고자 시작했던 것인데, 관련 내용이 너~무 많아 우선 이 정도로 일단락 지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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