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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의 많은 부분은 '위키백과'를 참고 했습니다. 아울러 여러 자료를 참고하여 개인의 생각을 정리한 내용이라 오류가 포함되어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은 감사히 받겠지만, 그 이상의 관심은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20세기가 막 시작된 1910년 6월.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는 "세계선교대회"라는 이름으로 기독교 선교관련 대표자 1200명이 모여 세계선교 보고를 통한 동향과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논하는 국제대회가 열렸습니다.
대회의 또다른 명칭 : 에딘버러 선교대회, 1910 World Missionary Conference, the Edinburgh Missionary Conference
이 대회는 "교회사를 바꾼 30대 사건"으로도 불리우며, 후일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주춧돌이 되었다고 평가 받습니다.
이 대회(Conference)에서 발행된 문서(Proceeding)는 아래의 사이트에서 제공됩니다.
UNIVERSITY OF MICHIGAN LIBRARY
World Missionary Conference, 1910. <To consider missionary problems in relation to the non-christian world.>
[Vol.1 ~ 9]
문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대회의 주요 관심사는 "비기독교 국가를 대상으로한 선교 활동에서의 문제점들" 입니다.
한국(당시 대한제국)과 관련된 내용은 [Vol.1] P.71~80, [Vol.3] P.385~390에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20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이런 대회가 열리게 된 것일까요?
[0] 근-현대 시기의 기독교 와 세계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의 탄생 이후, 로마제국 (및 지중해 연안 지역들)이라는 비옥한 밭에 뿌려진 씨앗이었던 '기독교'는 그 문화를 양분 삼아 성장을 거듭하여 유대교나 로마제국 양쪽으로 부터 탄압을 받던 신세로 부터 오히려 온 유럽지역 (및 지중해 연안과 그 인접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중세 시대에 이르게 됩니다. 이 시대는 오히려 교회가 제국화 되어 정치, 경제, 문화 등을 통해 인간 세상을 지배하였던 이른바 '암흑의 시대'라고 불리우기도 합니다. (기원후~15세기)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선물로 주셨다 굳건히 믿는 신앙인들의 수가 늘어나서 그런건지, 16세기에 접어들며 세계(유럽) 곳곳에서 '제국화 된 (더불어 타락하게 된) 교회'에 대한 저항으로 '종교개혁'의 새싹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종교개혁의 물결을 마르틴 루터 한사람이 끌고 갔던 것은 아닙니다. 루터 보다 백여년 앞선 시기의 얀 후스 등 유럽 곳곳에서 개혁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하였고, 루터의 시대에도 츠빙글리나 칼뱅 같은 개혁가들이 계속 등장하였습니다. 한편 영국에서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로마 카톨릭으로 부터 종교적인 독립을 하게 되는데 이때 성공회(국왕을 수장으로 하는)가 탄생하며, 종교는 본격적으로 인간세계의 정치체제와 영향을 주고 받게 됩니다.
이후 17~19세기를 거치며 세계는 점점 '제국주의'라는 정치체제 하에 인간들이 모여들면서 과거의 제국들의 훨씬 능가하는 힘을 발휘하면서 바야흐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면서 '땅을 정복하'는 시대를 맞게 됩니다. 이런 변화가 가능하게 된 이유로 근대에 들어 놀랍도록 발전한 과학기술 문명이 큰 역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한편 기독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들도)는 미지의 세계에 살던 사람들을 신앙으로 구원하겠다는 신념하에 식민지 건설의 첨병인 '제국주의 군대'가 향하는 곳에 함께 동행하게 됩니다. 스페인의 라틴아메리카 정복시기가 그러했고(카톨릭), 영국, 프랑스 등의 제국0들이 그러했으며 (성공회, 카톨릭, 개신교) , 미국(개신교)이나 일본(신도?)의 제국주의 침탈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기독교의 지나치게 세속화된 활동들의 결과일 뿐이며, '신앙'의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자 하는 쪽에서는 여전히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노력한 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그 명맥을 이어왔다고 믿습니다.
[1]세계선교대회
"세상을 향하여 온전한 신앙을 전하기 위한" 선교가 부흥을 하게 된 것은, 1793년 윌리엄 캐리의 인도 선교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미국 노스필드에서는 학생자원운동이 피어선과 드와이트 라이먼 무디와 같은 복음주의자들에 의해 태동되기고 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해외선교로 헌신하게 되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 개신교 선교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고, 세계 복음화의 실제적 방향과 전략을 점검하기 위해 국제 규모로 개최되었던 행사가 바로 1910년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서 개최된 '세계선교대회' 입니다.
첫날은 초기 YMCA운동의 주도적 리더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던 미국의 평신도 지도자 존 모트의 사회로 진행되었고, 이 날의 주제는 '비기독교 국가들에 대한 선교'였다고 합니다. 의장인 존 모트는 첫날의 기조연설을 통해 선교대회가 "선교현장의 문제들을 보다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전무후무한 선교상황의 긴급성을 교회에 알리는 것"에 목적이 있음을 강조하였으며, 이어지는 집중 토론의 시간에서도 '이슬람 세력이 급속도록 팽창하고 있는 아프리카 선교의 긴급성'이 보고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가 이슬람 세력을 경계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죠.)
이 대회에 참가한 한국대표로는, 조선 기독교 대표로 윤치호, 그리고 선교사로 한국에 와 있던 게일, 마펫, 언더우드 등 총 13명이었습니다. 당시 '조선 기독교의 이름'으로 선교사업의 위해 모금한 2만 5천 파운드의 현금을 함께 가지고 가, 대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으며, 아프리카의 우간다를 소개할 때 '아프리카의 조선(Korea of Africa)'라고 표현할 정도로 조선의 교회를 높게 평가하였다고 합니다.
(1910년이면 대한제국이 막 일제의 식민지가 되던 해라서 조선? 대한? 한국? 등의 명칭이 애매하던 때입니다. 그래서 참고한 자료의 표현을 되도록 그대로 사용합니다.)
한편 윤치호는 당시, '조선의 선교'를 위해 헌신한 유럽과 미국 선교사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도 '조선기독교'의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 ‘너무 급속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개종도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함으로써, 서구 선교사들의 선교자세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는 명연설을 남겼다고 합니다. 현지 교회의 기초를 든든히 세우지 않고 실적주의에 빠지기 쉬운 선교사들의 유혹을 정확히 지적한 것이지요. 윤치호의 감동적인 연설에 도전을 받은 한 참석자는 긴급동의를 통해 “가장 양질의 선교사를 조선에 파송해야 한다”는 발언을 덧붙였다는 속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1910년 에든버러에서 시작된 세계선교대회는 이후 2018년 탄자니아 아루샤 대회까지 10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약 14번의 국제대회로 개최되었습니다. 각 대회의 순서, 개최 도시, 개최 년도, 주제는 아래와 같습니다.
I 선교단체(Missions)의 선교에서 교회(the Church)의 선교로.
① 에든버러 1910 - 세계선교사대회,
② 예루살렘 1928 - 선교와 하나님의 나라,
③ 탐바람 1938 - 비기독교세계 안에 기독교메시지,
Ⅱ 교회(the Church)의 선교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로.
④ 휘트비 1947 - 순종 안에 동반자 관계,
⑤ 빌링겐 1952 - 하나님의 선교,
⑥ 아치모타 1957-58 - 교회와 선교,
Ⅲ 에큐메니컬 선교와 복음주의 선교의 갈등.
⑦ 멕시코시티 1963 - 6개 대륙 안의 선교,
⑧ 방콕 1972-73 - 오늘의 구원
Ⅳ. 에큐메니컬 선교와 복음주의 선교의 수렴.
⑨ 멜버른 1980 - 가난한 자를 위한 복음,
⑩ 샌안토니오 1989 - 그리스도의 방법을 따르는 선교,
⑪ 살바도르 드 바이아 1996 - 복음과 문화,
Ⅴ. 21세기 선교지형의 변화 속의 선교지평 확대(Expansion of Mission Perspectives).
⑫ 아테네 2005 - 치유와 화해,
⑬ 에든버러 2010 - 함께 증언하기,
⑭ 아루샤 2018 - 변혁적 제자도로 부르심
(다섯 시기로의 분류는 '예장뉴스'에 실린 장병준 교수(서울장신대학교)의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http://m.pck-good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90
19세기 말부터 미국교회가 우리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했을 때는 주로 '선교단체'가 중심이 되어 시작되었던 선교가 개 교회로 확산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이때는 복음서의 지상명령(혹은 대위임령)을 실천하기 위해 수 많은 '선교단체'나 '교회'들이 발 벗고 나섰었지요.
★지상명령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 28:19~20)
그런데 20세기 중반부터 '하니님의 선교'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하나님의 선교의 정의를 이렇게 내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에 따라, 하나님 자신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피조물의 구속을 위해.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만 봐서는 뭔가 모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단지 성경 속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수준이 아닌, 세상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도 성경 속 가르침을 스스로 실천하고 세상이 성경 속 하나님 나라 처럼 변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에 사는 사람에게 죽음이 찾아올까요? 배고픔이나 고통을 느낄 일이 있을까요? 인간이기에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억울한 고통을 당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누구나 공평하게 고통을 당한다면 말이죠. 그런데 인간사회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계층(계급)이 복잡해지면서 행복과 고통, 행복과 불행, 등 평등하게 누릴 수 없는 현대사회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선교는 신학의 영역이기에 제가 쉽고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앞으로 더 공부는 하겠지만 그 내용을 정리하여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이후, '하나님의 선교'의 개념과 함께 에큐메니칼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1-1] 에큐메니칼 운동
처음에 언급한 대로 1910년의 세계선교대회는 후일 '세계교회협의회(이하 WCC)'라는 조직의 주춧돌이 되는데, WCC가 추구하는 것이 바로 '에큐메니칼 운동(Ecumenism)', 즉 '기독교의 다양한 교파를 초월하여 모든 교회의 보편적 일치 결속을 도모하는 신학 운동' 입니다.
'에큐메니칼(ecumenical)'의 원래 의미는 신약성경의 오이쿠메네(οικουμενη)라는 표현에서 나왔는데, 총 15번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그리스어 '오이쿠메네'는 "사람이 사는 온 세상"을 의미했는데, 로마인들은 그 말을 로마 시민들에게만 적용해서 사용하였다죠. 이후 성경에서의 '오이쿠메네'는 "복음을 믿고 구원 받아야 할 사람들이 사는 모든 세상"이라는 의미로 번역되었습니다.
(주: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누가2:1)”란 말 속의 '천하'가 오이쿠메네 입니다.)
잠시 교회의 역사를 되집어 보겠습니다. 초대교회는 하나에서 시작되었지만 11세기에 서방교회(로마카톨릭)와 동방교회(동방정교회)가 완전히 갈라서게 되었고, 16세기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개신교회(프로테스탄트) 역시 이후 여러 갈래(교단, 교파 등)로 나뉘게 되면서, '에큐메니칼'은 많은 교파들 간의 연합과 일치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 에큐메니칼은 교회의 일치만이 아니라 분열된 세상에 대한 책임(정의와 평화), 창조 보전의 과제를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교파로 분열된 보편교회, 즉 기독교 내 모든 정통 교회들이 복음서에 명시된 예수의 뜻대로 하나됨을 지향하는 운동으로서, '종교다원주의'와는 달리 이슬람교, 유대교 등 타 종교 및, 여호와의 증인, 하나님의 교회, 신천지 등의 이단들은 참여할 수 없으며, 사도신경 등에 명시된 보편적인 정통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들의 연합 운동 입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도 이름 있는 '개신교회'의 교파들과 (동방)정교회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로마 카톨릭은 정식회원이 아닌 '참관인'의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 기독교 교회협의회(NCCK)'라는 범기독교협의체가 결성되어 많은 교단들이 참여 중이지만, 이른바 보수교단이라고 하는 예장합동, 예장고신 등과 침례교, 재림교, 오순절 계열(순복음) 일부 교단들은 신학적 차이를 이유로 교회일치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개신교회의 평신도들 중에서는 '에큐메니칼'이라는 용어가 생소하거나 혹은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은데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이지요.(이하 설명을 줄입니다.)
[2] 로잔 운동의 탄생
국내에서는 오래전부터 '에큐메니칼'을 공공연하게 반대하는 발언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복음주의' (라고 쓰고 '보수'라고 읽히는) 계열은 대체로 그렇더군요. 그렇다면 한국 이외의 외국은 어떠할까요?
외국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미국 개신교의 경우에도 '좌파'와 '우파' 그리고 제3의 세력(재세례파)이 각자 자신만의 신학관을 가지고 팽팽히 대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 '우파'를 복음주의계열이라 부르죠.)
"1970년대, 빌리 그래함은 정치적, 경제적, 지성적, 그리고 종교적 격변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 속에서 기독교 선교의 의미를 다시금 정립하는 국제 대회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함은 교회가 사회의 급속한 변화 이면에 숨겨진 사상이나 가치를 파악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74년 7월, 150개국의 2,4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스위스 로잔에 모여 세계복음화를 위한 국제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타임지는 이 대회를 ‘아마도 지금껏 개최되었던 어떤 모임들보다도 가장 광범위했던 놀라운 모임’일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이 대회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당시 세계의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합니다.
정식 명칭 : 로잔 세계복음화 운동(Lausanne Movement for World Evangelization)
(발췌 : 로잔협회)
https://lausanne.org/ko/%EB%A1%9C%EC%9E%94%EC%9A%B4%EB%8F%99%EC%9D%98-%EC%9C%A0%EC%82%B0
그런데 로잔대회에서 선언된 세가지 측면이란 무엇이었을까요?
1. 세계 선교를 위한 신학적 기초
존 스토트 (John Stott)가 의장직을 맡았던 국제 위원회가 초안을 작성했던 로잔 언약은 현대 교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복음 전도의 필요성과 목적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로잔 언약은 각기 다른 배경을 지닌 복음주의자들의 연합을 끌어냈고, 20세기 말 그들의 선교적 노력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2. 미전도 종족
‘선교학의 중대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랄프 윈터(Ralph Winter)의 1974년 로잔대회 기조 연설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미전도 종족’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윈터는 타문화권 선교가 교회의 우선적인 사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단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나, 모국어로 된 성경이 존재하지 않는 수천의 민족 집단들이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 통전적 선교
제1차 로잔대회는 복음전도와 사회정의 모두가 선교 사역에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두 명의 라틴 아메리카 신학자인 사무엘 에스코바(Samuel Escobar)와 르네 빠디야(Rene Padilla)는 이에 관해 가장 분명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로잔대회의 이런 강조는 당대 복음주의자들의 사고에 중대한 인식 변화를 끌어 냈으며, 1974년 로잔대회로 인해 총체적 – 혹은 전인적 – 선교개념이 오늘날 널리 수용되었습니다.
이미 1910년 세계선교대회 이후 수많은 선교관련 행사들이 개최되었고, '선교'는 단지 복음을 전하는 것 만이 아닌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를 직접 구현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교'라는 선교신학까지 만들어 실천해 나가던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느껴졌던 것일까요? 그래서,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는 또 다른 모임이 개최되었던 것일까요?
그 모임의 주인공은 바로 에큐매니칼 진영의 움직임에 동의할 수 없었던 복음주의권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선언된 세가지 측면이라는 것도 (복음주의 신학과 어울리는) '신학적 기초',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불평등과 차별 등을 타파하는 것 보다 아직도 '복음'을 모르는 '미전도 종족'에 대한 관심, 그리고 통전적, 즉 '전체를 아우르고 조화시키고 통합한다'는 의미와 선교가 어떤 관계인지 설명만으로는 모호하기만 합니다. 누구는 '모든 교회가 온전히 복음을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라고도 하고,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에서 '다하는' 것이 그것이라고도 합니다. 혹은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통합하는 것이라고도 하죠.
'하나님의 선교'와 '통전적 선교'
이쯤 해서,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w/ Copilot)
인공지능이 인간들 보고 '지혜롭게 접근하라'고 합니다.

[2-1] 로잔운동의 방향성
1974년 스위스 로잔대회 이후, 지금까지 3번의 국제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각 대회의 특징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번에도 Copilot이 도와주었습니다.😏)
에큐매이칼 진영의 움직임에 반대하여 복음주의권을 중심으로 태동한 '로잔운동' 이지만, 2010년 케이프타운 대회에서는 '사회적 책임과 복음 전도의 관계' 등의 주제들이 논의되었고, 이 대회에서 결의된 '케이프타운 서약문'에도 복음주의권에서 피하고 싶었던 에큐매니칼 선교신학을 반영하며, 사회적 관심과 복음전도를 통합한 내용이 기재되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기독교인에게 '선교'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말씀이죠. 그래서 누구나 '땅끝까지' 복음을 전도해야 한다고 배우고 가르치고 또 실천하려 합니다. 그런데 미전도 종족 모두에게 '복음'이 전파되기만 하면... 그 다음은? (물론 이런 질문은 신학적으로는 '종말론'과 함께 이야기 되는 부분이니 여기서 줄입니다.)
국가 간 전쟁이 끊이질 않고 그 사이에서 수 많은 생명들이 목숨을 잃거나 난민이 되어 정처없이 헤매이고 있으며, 하나의 국가나 공동체 내에서도 정의나 평등이란 단어 보다는 차별과 혐오가 점점 더 커져가는 세상. 설혹 미전도 종족은 사라지더라도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지구라는 공간에 함께 살고 있는데 이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런 질문을 교회의 목사님께 하게되면... 😓)
[2-2] 제4차 로잔대회 @서울
세계 복음화를 외치며 전세계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이 중요한 자리가 드디어 대한민국 서울(실제 개최 장소는 인천 송도 컨벤시아, 2024/9/23~27)에서 열립니다.
이 대회를 위해 '로잔교수회'라는 모임도 결성되었고, 주요 신학대에서 14명의 선교학자들이 모여 '로잔운동과 선교'라는 연구주제로 총 7권의 연구도서를 출판하기도 하였습니다.
7권 모두 비치된 곳은 국회도서관 같습니다.
한편, 지난 5월 로잔운동이 2050년을 내다보며 세계선교에 대한 현황과 통찰력을 제공하는 '대위임령 현황 보고서(State of the Great Commision Report, SoGC)'를 발표하였습니다. 약 150명의 세계의 선교 전문가가 집필에 참여하였고, 총 500페이지 이상의 분량의 영어판 전문이 먼저 발표되었고, 한국어판은 7월에 배포되었다고 합니다.
https://lausanne.org/ko/report
기독교 선교 역시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과 따로 갈 수는 없겠지요. 현대사회의 미래의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 모두 공감하는 주제를 선교에서도 고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대위임령'이라는 표현은 종종 보거나 들리긴 하는데 의미를 다시 한번 짚어봅니다.
대위임령(大委任令, The Great Commission) :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 기록된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선교의 다섯가지 명령
1)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2)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3)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8).”
4)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5)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기독교인이라면 이미 여러번 듣고 읽었던 말씀들이며 주님의 명령이란 것도 알고 또 제자들로 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기독교인들이 실천하고자 하는 주님의 가르침 입니다. 이걸 굳이 '대위임령'이란 용어로 다시 정의했을 뿐이죠.
[3] 마치며
로잔운동이나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제4차 로잔대회에 대해 개교회에서의 반응은 어떨까요? 교인들에게 열심히 설명하며 마음으로라도 참여하도록 홍보하는 목사님들도 계시겠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은 교회들도 있겠지요. 물론 이런 평가도 복음주의권 교회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겠죠.
에큐매니칼 진영에서 추구하는 '사회참여'의 이야기가 이번 서울대회에서는 얼마나 들릴까요? 전세계 복음주의권 기독교 관계자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오직 복음'만 외치고... (대회장 바깥에서는 차별과 혐오도 불사하겠다는 구호가 울려퍼지는 것은 아닐지...)
이 시대 아모스와 같은 예언자들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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